여순사건 유족 취재길에서 우연히 만난 왕대마을과 초연정

처음부터 순천 초연정 원림을 찍으러 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암호 안쪽 왕대마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초연정을 다시 찾아가 영상으로 담고, 별 촬영 대신 저녁 마실의 기억을 남긴 이야기입니다.
여순사건 유족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간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주암호 안쪽 깊숙이 자리한 왕대마을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초연정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습니다.

주암호 안쪽 왕대마을, 순천이지만 순천 같지 않은 곳

왕대마을에 들어서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순천인데도 이렇게 다른 풍경이 있구나. 제가 알고 있던 순천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주암호 안쪽으로 깊이 들어와 만난 마을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바람 소리입니다.
풍경이 예쁘다는 생각에 이어, 바람 소리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장소가 있습니다. 잠깐 머무르며 귀를 기울여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들이 있는 곳이요. 제게 왕대마을은 그런 곳이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께 여쭤봤고, 그분들이 초연정을 알려주셨습니다.
검색으로 찾아둔 장소도, 미리 촬영 목록에 적어둔 장소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사시는 분들의 안내로 알게 된 곳이었습니다.

초연정 원림 촬영, 그날의 짧은 기록에서 본 촬영으로

초연정을 보고 나니 이곳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졌습니다.
그날도 일부를 촬영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자리에서 조금 담는 것과, 제대로 담아보겠다고 마음먹고 찾아가는 것은 다르니까요. 따로 본 촬영 날짜를 잡아 다시 방문했습니다.
처음에는 취재길에서 우연히 알게 된 장소였지만, 두 번째에는 그곳을 찍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돌아보면 그 과정이 좋았습니다. 계획해둔 장면을 찾아가는 일도 있지만, 현장에서 만난 풍경 때문에 새로운 촬영을 계획하게 되는 일도 있다는 것. 지역을 다니다 보면 아직 제가 모르는 곳이 많고, 그곳을 알려주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요.
초연정 촬영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별을 찍으러 갔다가, 저녁 마실만 하고 왔습니다

본 촬영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밤에는 별도 담아보고 싶어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별 촬영은 실패했습니다.
원했던 장면을 얻지 못했고, 결국 그날은 저녁 마실만 하고 돌아왔습니다. 촬영하러 간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방문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카메라에 담아온 결과물과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꼭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별을 찍는 데는 실패했어도, 그곳에 다녀온 저녁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초연정을 떠올리면 촬영했던 날들과 함께 그 저녁이 생각납니다. 별을 못 찍고도 참 좋은 곳이었다고 기억하는 걸 보면, 저는 그 장소 자체가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타임랩스 촬영중 잠깐 나온 하늘... 초연정에 비춘 녹색 불빛은 cctv불빛이였다. 조명을 가져갔다면 좋았을것을....
타임랩스 촬영중 잠깐 나온 하늘... 초연정에 비춘 녹색 불빛은 cctv불빛이였다. 조명을 가져갔다면 좋았을것을....

영상 밖에 남아 있는 기억

완성된 영상에는 촬영한 장면들이 남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을 만들게 된 과정은 화면만으로 다 전해지지 않습니다.
여순사건 유족 취재로 찾아갔던 왕대마을, 순천이지만 낯설게 느껴졌던 풍경, 귀에 들어왔던 바람 소리, 초연정을 알려주신 마을 어르신들. 그리고 날짜를 잡아 다시 찾아간 촬영과 별 대신 저녁 마실을 하고 돌아온 날까지.
제게 초연정 영상은 그런 기억들과 함께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지역의 풍경을 기록할 때, 장소만 담는 것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을 알게 된 계기와 사람들, 다시 찾아가고 싶었던 마음도 함께 담기는 것 같습니다.
초연정은 제게 그런 곳입니다.
별은 못 찍었지만, 다시 떠올리고 싶은 저녁은 남아 있는 곳. 

영상으로 만나는 순천 초연정 원림

순천 초연정 원림 | 지역이야기 #01
공공협동조합 지역이야기 #01 ·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럴까? 순천 초연정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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